현대의 일상을 만든 사람들

프리츠 하버 - 축복과 재앙을 함께 가져다준 과학자 (上)

lonedaisy 2024. 6. 12. 15:44

 

농업에 꼭 필요한 질소비료. 하지만 질소를 이용하는게 어려웠던 근본적인 이유,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낸 과학자의 이야기

 

인도네시아의 논

농부의 걱정

나는 어렸을 때 밥을 잘 안 먹는 아이였다. 편식이 심했고 양도 적었으며 그나마 먹는데도 오래 걸려서 늘 가족들이 식사를 다 마치고 상을 걷을 때쯤 허겁지겁 남은 밥을 먹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꾸물럭 대고 있으면 그냥 밥그릇을 걷어버리면 될 텐데 어른들은 밥을 남기는 것만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다. 혹여 내가 밥을 남기려고 하면 늘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 쌀 한 톨을 키우기 위해서 농부들이 얼마나 피땀을 흘리는지 아냐?”

이 말은 그래도 순한 맛이다. 좀 더 매운맛 버전은,

“밥 남기면 나중에 지옥 가서 그 남긴 밥 다 먹어야 한다.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남긴 거 한 번에 다 비벼서 준다.”

학교에서도 늘 농부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왔지만 농부의 마음이라는 게 꼭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대학교 때 알게 되었다. 그것도 농부의 입을 통해서 직접 말이다.

 

대학교 1학년때 학생회 활동을 하던 친구의 꼬임에 홀랑 넘어가서 농활에 참가했다. 그때 간 곳은 경북의 어느 마을이었는데 한여름이라 한창 고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그해 고추농사는 참 잘 됐다. 넓은 고추밭의 뙤약볕 아래에서 따도 따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추를 수확해서 포대에 담았다. 한 포대에 70kg이 넘는 포대들이 밭두렁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니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워지는 것 같았다.

새참을 먹으며 밭주인인 농부아저씨에게 덕담을 건넸다.

“고추농사 엄청 잘 됐네요. 올해 풍년이라 기쁘시겠어요!”

“아이라! 올해는 풍년이 들어가 고마 걱정이다.”

상식이 파괴되는 것 같은 답변에 귀를 의심했다. 

“올해는 고추농사가 너무 풍년이라 고추값 마이 떨어지지 싶다. 고마 확 전라도 쪽에 태풍이 와야 고추값 오를낀데. 낄낄”

저런!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곳마저 그 마수를 뻗친 모양이다. 풍성한 수확물을 들어 올리며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밀짚모자 쓴 농부 아저씨의 사진을 보며 더 이상 푸근한 기분을 느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수확물을 앞에 둔 함박웃음 뒤편으로 떨어지는 가격 걱정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어찌 알까? 우린 흉년이 아니라 과잉 생산을 걱정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해서 이제 산술적으로 단순히 나누면 전 세계 인구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정도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으니 식량이 부족해서 인구를 늘일 수 없다던 맬서스에게 크게 한방 먹인 셈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게 바로 무기질 비료다. 그중에서도 질소비료가 돌파구였다.

 


 

질소가 ?

질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질소는 생명체에게 반드시 필요한 원소다. 생명체의 기본 물질 중 하나인 단백질을 구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먹이사슬의 위쪽에 있는 초식/육식 동물의 경우 음식을 통해서 이 단백질을 흡수한다. 하지만 식물들은 입장이 좀 다르다. 어떻게든 질소를 가져다 직접 단백질을 합성해야 하는데 그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질소는 공기 중의 78.08%를 차지할 만큼 흔하디 흔한 원소니까 그냥 가져다 쓰면 될 텐데 그게 쉽지 않다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은 공기 중의 질소를 직접 이용해서 질소화합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 질소는 원자 두 개가 분자 상태로 매우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다른 원자들과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을 하고 결합을 해야 단백질을 만들 텐데 그러질 않으니 공기 중에 아무리 많이 떠다녀도 가져다 쓸 방법이 없다. 식물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과자회사에서 질소과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과자봉지에 굳이 질소를 충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응성이 적어 과자의 변질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나 자동차의 타이어에 질소를 주입하는 것도 반응성이 적기 때문에 내부 발화를 억제하고 타이어이 산화를 막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질소의 이 단단한 결합을 끊고 다른 원소와의 화합물을 만들려면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대로 질소가 포함된 화합물에서 다시 질소 분자로 되돌아갈 때 도로 내놓는 에너지의 양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많다. 그래서 주로 폭발하는 물질은 질소화합물인 경우가 많다. 흑색화약의 원료가 되는 질산칼륨, 다이너마이트의 원료인 니트로 글리세린, 폭발물 TNT(트리 나이트로 톨루엔), 나이트로셀룰로오스 등, 죄다 앞에 니트로(나이트로, Nitro-)가 붙는데 질소를 의미하는 Nitrogen에서 온 말이다. 최근에 있었던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의 2차 대폭발 역시 항구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Ammonium nitrate)이 폭발한 것이 가장 유력한 원인이다. (어떤 물질이든 이름에 질산, 혹은 나이트로가 붙었는데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긴장해야 한다. ㅋ)

 

 

 

식물이 질소를 이용하려면

 

대부분의 식물들은 질소 분자를 직접 이용할 수 없으니 다른 형태로 질소를 이용한다. 자연계에서는 대기 중에서 번개가 칠 때 우연히 만들어진 질소산화물이 비에 녹아 땅속에 스며들기도 하며 흙 속의 박테리아가 만들어 내거나 동식물의 사체가 분해되며 남겨놓은 질소 화합물을 뿌리를 통해 흡수한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서 콩과 식물들은 뿌리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를 통해 공기 중의 질소를 직접 이용하기도 한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고정효소(nitrogenase)의 촉매작용을 통해서 공기 중의 질소를 원료로 암모니아(NH3)를 만들어서 식물에게 제공하고 식물은 이 암모니아를 이용해 단백질을 합성해서 뿌리혹박테리아에게 나누어 준다.

 

뿌리혹박테리아로 인해 생긴 뿌리의 혹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물들이 땅속에 있는 질소화합물들을 다 흡수해서 고갈되어 버리면 당연히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지력이 고갈되었다고 하는 그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인류가 농사를 지어 식량을 얻는 데 있어 굉장히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이렇게 질소가 고갈된 상태의 토양에 다시 지력을 보충해 주려면 앞서 언급한 콩과 식물을 기르거나, 농사를 쉬어서 자연히 보충이 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비료를 통해서 인공적으로 질소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질소가 없어도 자랄 수 있는 감자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 

위의 방법 중에서 인공적으로 지력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오래전부터 애용하던 것이 ‘거름’하면 바로 떠오르는 ‘유기질비료’였는데, 동식물의 사체나 분변을 이용하는 이 방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비료의 양은 한계가 있었다. (일단 식물이 많이 자라야 비료도 많아지니까) 결국 식량의 생산량이 재배면적과 그에 포함된 질소의 총량에 따라 제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구의 수가 식량의 생산의 한계에 따라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맬서스 트랩은 이때만 해도 나름 설득력을 가진 이론이었다. 

 

 

구아노 이야기

 

식물의 성장을 위해 거름(유기질비료)으로 지력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농부들의 기본 상식이었지만, 이 통념을 깨트린 것은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였다. 그는 1840년에 저서 《유기 화학의 농업 및 생리학에 대한 응용》에서 질소, 인산, 칼륨 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중에서 인산과 칼륨은 과인산석회를 통해 비교적 쉽게 보충할 수 있었지만 질소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주목한 것이 독일의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가 남미대륙을 탐험하다 발견한 구아노(guano, 인광석)였다. 구아노는 동물(새, 박쥐, 펭귄 등)의 똥과 알 껍질 등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광물질인데, 인산염과 질소화합물이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비료로 쓰기에 딱 적합했다. 1804년 훔볼트가 구아노를 소개했을 때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이후 리비히의 연구덕에 재조명받게 되자 한동안은 신나게 비료로 잘 써먹었다. 

하지만 이 구아노가 동물의 배설물 등이 오랜 기간 축적되어 만들어진 물질이다 보니 공급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에 무한정 가져다 쓸 수가 없었다, 새똥이 쌓이는 속도가 새똥을 가져다 쓰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이것 역시 결국에는 고갈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것이 심지어 군수물자이기도 해서 마냥 농업에만 쓰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질소산화물은 화약, 다이너마이트, TNT 등의 재료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런 이유에서 예전 우리나라에서 대북지원을 할 때 비료 지원을 두고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를 제외하면 직접 비료를 지원한 적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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